검은 장갑의 올림픽, Black Salute
언제 부터인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버릇처럼 오늘은 나의 삶에 어떤 흔적이 남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역사속의 오늘은 어떤 흔적이 묻어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을 바꿀려고 했던 수많은 땀과 눈물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어려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오늘은 평생을 혁명에 바친 어느 혁명가가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내일을 더 살지 못함을 한탄하며 단두대에 사라진 날입니다. 오늘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거대한 투쟁이 있었던 날이고 또한 오늘은 새로운 운동의 이념과 전망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날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오늘의 역사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혁명의 역사, 진보의 역사를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누가 오늘의 또 다른 의미를 기억할까요? 박종태 동지의 죽음도 역사속의 한 날짜에 변혁을 위한 진한 눈물방울을 적셔 놓았겠지만 몇 년이 지나 얼마큼의 사람들이 그 날짜에 진하게 물든 그 동지의 피눈물을 기억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매일 나태해지는 우리의 삶을 혁명의 역사, 투쟁의 역사, 진보의 역사속에서 다시 돌아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아주 가끔씩 짧게라도 오늘의 의미를 새겨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앞으로 사회운동을 해갈 후배들을 위해 2009년부터 틈틈이 쓴 교육용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글을 참고했고, 불가피하게 인용된 부분이 있음을 밝힙니다.
총 70여편의 글 중 십여개만 추려 블로그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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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검은 장갑의 올림픽, Black Salute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박지성이 골을 넣은 다음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남쪽 땅, 척박한 자본주의 그늘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오늘 이 승리를 통해 잠시라도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올림픽에서 금을 따고 시상대에 선 김연아가 손목에 붉은 리본을 매고 금메달을 목에 건 후, 그 의미를 묻는 기자들에게 ‘오늘도 화장실이나 계단 후미진 곳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흔드는 손에 화답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모습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물론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이미 상업주의와 국가주의의 손에 포획된 스포츠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일이겠습니까?
“스포츠 경기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힘든 훈련을 거친 선수들이 빼어난 체력과 정신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주는 보편적인 감동이다. 비유하자면 일류 무용이나 오페라에서 받는 감동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우수성이라는 신화로 바꿔 사람들을 국가주의에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온 것이 근대 스포츠의 역사라 할 수 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서경석 교수(도쿄경제대학 교수)가 한 칼럼에서 쓴 글입니다. 올림픽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이제 국가와 민족은 또 하나의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그 승리와 패배의 과정에서 묻어나는 땀방울과 거친 호흡,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연단시키는 인간의 모습을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한 운동선수의 역경을 딛고 일어 선 인간 승리는 곧 민족과 국가의 승리이자 우수성으로 포장되고 그것이 곧 국력으로 치환되기 일쑤입니다. 국가와 자본은 스포츠를 통해 사회통제를 끊임없이 획책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은 월드컵에서의 한 판의 승리, 올림픽에서의 하나의 금메달이 그 어떤 정치행위보다도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결정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든 스포츠에 끊임없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자본은 모든 스포츠를 상업화하여 인간을 상품화하고 모든 선수들을 자본주의의 노예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스포츠가 갖고 있는 연대와 평화의 정신은 철저히 실종되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스포츠의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지성에게, 김연아에게 국가주의의 포박을 끊고 연대와 평화의 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더구나 그 연대와 평화가 권력의 사회통제와 자본주의의 세계지배를 향한 저항의 의미를 담는 것이라면 이는 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국가주의의 포박을 끊는다는 것은 곧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하는 거대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일이 될 것이며 종국적으로는 자신의 운동의 미래와 삶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조국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연대와 평화를 말하는 운동선수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라는 올림픽의 강령이나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올림픽의 이상은 이미 스포츠 세계에서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종되어 가는 올림픽 정신, 즉 ‘인간의 연대와 인류의 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을,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의 풍요로운 개인의 미래를 던져 버리면서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 토미 스미스(Tommie Smith)와 존 카를로스(John Carlos)가 바로 그들입니다. 바로 오늘, 1968년 10월 17일, 멕시코 올림픽 200M 시상식에서 수만 명의 관중과 수억의 세계 시청자들에게 이들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도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들은 신발을 신지 않고 검은 양말을 신은 채 시상식에 나타났습니다. 목에는 검은 색의 스카프를 두르고 손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메달 수여가 끝나고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미국의 국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금메달을 목에 건 스미스가 검은 장갑을 낀 오른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동메달리스트인 카를로스도 검은 장갑의 왼손을 들어 올립니다. 그리고 국기도 관중도 외면한 채 조용히 고개를 수그립니다. 이들은 이 순간 미국 흑인의 인권, 소외되고 있는 모든 인간의 해방과 연대, 인류가 함께 사는 세상을 염원하고 있었습니다. 성조기아래, 국가주의라는 이름아래, 스포츠가 백인의 흑인지배의 도구가 되는 것에 대하여 저들은 분명하게 저항했습니다.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열광하고 환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인간의 연대와 해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멕시코 올림픽이 개최된 1968년은 전 세계가 68혁명(혹은 68운동)의 격변을 겪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68혁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세계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난 사회적 운동으로 정치 사회 문화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혁명이었습니다. 그 세계사적 격변의 원동력은 좌와 우의 이념을 떠나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 요구로 집약할 수 있었습니다. 68혁명은 물질적인 부가 늘어나고 정치적인 민주주의 혹은 정치적으로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질서가 뿌리를 내리는 시기였던 60년대 중반 이후 세계 각국에서 청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68혁명은 자리를 내려가는 기성질서, 즉 무늬뿐인 민주주의와 인간의 소외를 심화시키면서 풍요로움을 포장한 자본주의로 위장한 낡은 세계에 대한 젊은이들의 파격적인 해체와 거부의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구체적으로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의 학원 민주화운동과 반정부운동, 미국과 남아공 등에서의 흑인 인권운동, 그리고 베트남전 반대 등의 제국주의 반대운동과 식민지 민족에 대한 연대운동, 유럽과 미국에서의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권리운동, 성해방운동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멕시코 올림픽은 이런 세계사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열렸습니다. 따라서 멕시코 올림픽도 68혁명의 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었습니다. 멕시코의 대학생들은 학원 민주화 투쟁과 올림픽 개최에 대한 반대운동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올림픽이 열리기 10일전 멕시코 정부가 학생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해 200명이상의 사망자를 낸 ‘틀라텔레코(Tlatelel- co)의 밤’으로 불리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인종차별 국가인 남아공의 참가 여부를 놓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참가 허용으로 결정하자 아프리카와 소련, 그리고 아시아의 50개국 이상이 올림픽을 집단적으로 보이콧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남아공의 불참으로 간신히 올림픽이 예정대로 개막되었지만 멕시코 올림픽은 세계전체를 감싸고 있는 68혁명의 소용돌이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베트남 반전운동과 흑인 인권운동이 전국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대학 곳곳에서 반전 집회가 연일 개최되고 있었고 미국의 학생들은 흑인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을 결합한 연좌시위, 집회를 통해 68혁명의 또 하나의 축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흑인 인권운동은 1968년 4월 4일, 흑인 인권운동의 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가 암살당하고 난 뒤, 격렬한 시위를 동반한 도시폭동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으며 수백 명의 흑인들이 경찰에 의해 시위의 과정에서 사살되었습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은 최정점을 향해 가고 있었고 이런 과정에서 다가 온 멕시코 올림픽을 두고 흑인들은 스포츠를 흑인에 대한 통제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아메리카의 백인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그리고 흑인 인권운동의 한 투쟁방식으로 모든 흑인들이 올림픽 참가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부의 흑인들은 올림픽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백인주도의 미국에서 흑인들, 그것도 흑인 운동선수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었던 올림픽의 메달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흑인들은 올림픽에 참여하면서 투쟁하는, 새로운 올림픽 운동, 즉 OPHR(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 :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이라는 이름의 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당시의 모든 흑인들이 그러했듯이 흑인 인권운동에 대해 강한 지지와 연대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스포츠를 통해, 올림픽이라는 공간을 통해 미국이 화이트 아메리카만은 아니란 것을 알려내고 미국 내에서 흑인이 받고 있는 억압과 차별에 대한 지지를 가장 평화적인 방식으로 호소하고 싶어 했습니다. 나아가 모든 억압받는 소수민족과의 연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후에 카를로스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우리들이 눈에 띄는 항의행동을 안하면, 미국 내 흑인의 억압상태를 세계에 알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의 행진을 하거나 감옥에 갇히는 것이 아닌 다른 행동으로 나는 이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원래는 세계에 있는 모든 억압된 소수민족을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젊은이를 위해. 그들에게 훌륭한 목표를 위해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결승점을 1위와 3위로 통과하는 스미스와 칼로스
육상 200M 경기는 10월 17일에 열렸습니다. 미국 예선전에서 19초 70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존 카를로스와 그의 동료 토미 스미스는 경기전부터 우승후보였습니다. 금메달은 경주막판에 힘을 낸 토미 스미스의 몫이었고 존 카를로스는 호주의 피터 노만(Peter Norman)에게 2위 자리마저 뺏기며 3위로 들어 왔습니다. 특별히 이변이랄 것도 없는 예상에 근접한 결과였습니다. 시상식이 있기 전까지는 수십 개 종목중의 한 경기와 다를 것이 없는, 미국이 역시 육상 단거리에서는 강자라는 것을 확인시킨 경기에 불과했습니다.
시상식 전에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혹시 수상자가 IOC 위원장인 애버리 브런디지(Averry Brundage, 1887~1975, 스포츠의 상업주의에는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었으나 반유대주의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었음, 1952년부터 1972년까지 IOC 위원장)라면 그가 주는 시상식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대회 조직위에 통보하였습니다. 인종차별로 세계 모
든 나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남아공의 참여를 끝까지 관철시키려 한 브런디지의 인종차별적 언행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선수가 IOC 위원장의 수상을 거부하고 나섬으로써 IOC는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대회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조직위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상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상식 사진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신발을 신지 않은 채 검은 양말만을 신고 시상식장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흑인의 빈곤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미스는 목에 검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습니다. 바로 흑인의 자부심, 흑인의 자존심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3위를 한 카를로스는 윗도리 운동복의 자크를 열어 놓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불량해 보이는 이 복장은 미국의 블루칼라 노동자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흑인만이 아니라 미국내에 억압받는 모든 노동자와의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카를로스가 걸고 있는 목걸이는 미국 땅을 밟은 흑인 선조들을 묶었던 족쇄와 백인들이 가했던 린치를 의미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검은 장갑을 낀 손을 하늘로 높이 쳐들고 있습니다. ‘블랙파워 살루트’(blackpower salute). 흑인 인권운동의 과정에서 퍼져나간 인종차별 반대 의사표시였습니다. 그것은 또한 베트남전 반전에 대한 의사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국가를 등에 업고 싸운 것이 아니라 강대한 국가를 상대로 싸웠던 것입니다. 참으로 어떤 운동보다도 강렬하고 처절한 몸짓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부착한 커다란 뱃지, OPHR이라 쓰여진 뱃지가 보입니다. 올림픽이 인권을 신장시키고 인간의 연대와 인류의 평화의 제전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위를 한 호주의 백인 선수 피터 노만의 가슴에도 같은 뱃지가 달려 있습니다. 피터 노만은 흑인들의 인권운동과 그들이 지향하는 올림픽 정신에 기꺼이 동참한 것입니다. 흑백이 하나가 되고 인간이 연대하여 모든 억압받는 것에 대한 해방을 호소하고 있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미국 내에 몇 안 되는 선택받은 흑인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그들은 그렇게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바쳤습니다. 그들은 화이트 아메리카의 미국인으로 살기 보다는 흑인들과 함께, 그 빈곤과 억압의 고통을 넘고자 투쟁하는 흑인들과 함께 살기 위하여 자신들의 삶의 최고의 순간을 아낌없이 던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올림픽에서의 메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백인들이 허용한 흑인의 운명을 거부할 때 무슨 일이 닥치게 될 것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백인이 지배하는 국가가 스포츠를 통해 사회를 어떻게 통제하고 그 속에서 억압받는 민중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를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행동으로 우리 두 사람은 분명히 조국을 대표해서 출전했지만, 그 이전에 자신과 우리 민족(흑인)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표명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굽실거리지 않고 저항하겠다고 말이죠.” - 존 카를로스
“만약 우리가 경기에서 우승을 하고 평범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흑인 미국인(Black American)이 아닌 미국인(American)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등수에 들지 못했다면? 아마 그때 미국인들은 우리를 검둥이(Negro)쯤으로 불렀겠죠. 우리는 흑인입니다. 흑인임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미국에 있는 흑인들은 그날 밤 우리가 했던 그 행동을 이해 할 것입니다. - 토미 스미스
시상식이 끝나는 그 순간부터 스미스와 칼로스의 삶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스타디움에는 야유와 환호가 교차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TV를 통해 이 장면을 시청한 미국인들은 충격에 사로 잡혔고 할 수 있는 모든 비난을 쏟아 부었습니다. 타임지(紙)는 ‘보다 빠르게, 보다 높이,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라는 올림픽의 구호를 ‘보다 성질내며 보다 심술궂게, 보다 추하게’(Angrier, Nastier, Uglier)라고 바꾸어 이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주류 언론들도 스포츠가 정치에 오염되고 있다며 비난대열에 일제히 동참하였습니다. IOC 위원장인 브런디지와 미국올림픽 위원회는 이들이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했다며 선수촌에서 퇴촌을 명령하고, 메달을 박탈하고, 영구제명이라는 선수에게는 사형에 해당하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소명을 미국올림픽위원회로부터 요청받았지만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 알고 있었습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올림픽위원회의 결정과 무관하게 선수촌을 떠나 스스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의 영광을 뒤로 하고 그날로부터 그들은 숱한 역경과 고난의 길을 넘어야 했습니다. 살해의 위협이 상존했고 변변한 일자리 하나를 잡기도 어려웠습니다. 끊임없는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악의적인 선전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카를로스의 아내는 이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말았고 스미스는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도 두 사람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인들은 우리의 행동을 국가를 부정하고 국가에 대해 공격하는 호전적인 투사로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다만 진실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인들과 함께 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기다린 것은 끝없는 고통이었습니다. 흑인은 우리와 사귀는 것을 두려워했고 백인은 우리와 어떤 접촉도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공산주의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린치의 위협을 느꼈고 경제적으로 오랜 기간 부채 때문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를 희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 오랫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오랫동안 괴로움을 당해야 했지만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우리들 흑인선수들은 모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 기회가 찾아왔을 뿐입니다.” - 토미 스미스
그러나 그들이 짊어져야 할 고난과 고통은 컸지만 그들이 보였던 인권을 위한 고통스러웠던 몸부림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가주의와 상업주의에 찌들어 가고 있는 스포츠 세계에 대한 자성과 비판이 일어날 때면 언제나 스미스와 카를로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오늘 스포츠가 권력과 자본의 사회통제의 수단이 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는 역대 올림픽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행위에 대해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숭고한 자리에 올려 놓았다”고 써 놓았습니다. 미국의 산호세 주립대학의 교정에는 멕시코 올림픽의 시상식 장면이 동상으로 재연되어 있습니다. 이 동상은 미국 인권운동의 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미국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흑백문제와 가난한자,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새롭게 상기시켜 주는 상징물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연못에 조약돌 하나를 던졌을 뿐입니다. 이것이 물결을 일으켜 사회전반에 파급된 것이지요.”
2위를 한 오스트렐리아의 피터 노만의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피터 노만은 가슴에 뱃지를 함께 담으로써 이 상징적인 역사적 행동에 같이 하였습니다. 노먼은 우승하면 미국인 취급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검둥이'로 살아가야 하는 흑인들의 현실에 강한 분노를 나타내며 동참하였습니다. 백인 이외의 인종, 특히 황색인종의 이민을 배척하고 정치·경제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도 백인사회의 동질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백호주의(白濠主義)의 뿌리가 깊이 내려 있던 오스트렐리아 사회에서 백인으로서 이러한 행동에 동참한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노만 또한 오스트렐리아에서 국가에 등을 돌린 배신자로 비난 받았고 사회적으로 온갖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4년 후인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100m와 200m 종목 출전자격을 확보했지만 오스트렐리아 정부의 보복조치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오스트렐리아 올림픽위원회가 노먼의 참가를 막기 위해 육상을 아예 출전종목에서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피터 노만은 스미스와 칼로스 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는 나중에 산호세 대학의 동상제막식에 참석하였습니다. 현재의 동상에는 2위 자리가 비워져 있지만 당초에는 피터 노만의 동상도 세울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만은 이를 겸손한 마음으로 거절했습니다. 자신이 설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나는 연못에 조약돌 하나를 던졌을 뿐입니다. 이것이 물결을 일으켜 사회전반에 파급된 것이지요.”
피터 노만 또한 지금은 오스트렐리아에서 스포츠 정신의 새로운 귀감으로 평가되고 존경받고 있습니다. 노만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경례 : Salute>가 2008년 시드니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되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는 오스트렐리아 선수단을 태운 베이징행 전세기는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 이 영화를 반복해 틀어주며 그의 영웅적 행동을 기렸습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노만이 죽었을 때 시드니로 가서 운구행렬의 맨 앞에 섰습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그들 세 사람은 자신들이 걸었던 길을 마지막으로 같이 걸어 갔습니다.
한 달 정도 후에 아시아대륙의 올림픽,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다시 우리는 스포츠가 갖고 있는 국가주의와 상업주의의 광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연일 방송의 머릿기사는 아시안 게임의 메달 소식으로 채워질 것이고 그 속에서 국가권력은 정치와 경제, 사회전반에 걸친 정교한 사회통제의 시스템을 가동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는 실종되고 온갖 사회적인 모순은 스포츠의 광기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입니다. 메달리스트들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추앙될 것이고 권력과 자본은 그들에게 국민의 딸, 국민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며 국가를 계급이 사라진 하나의 가족공동체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청와대는 메달리스트들을 초청하여 밥을 먹이면서 스포츠와 국가권력의 동질성을 과시하고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는 사술을 부리고 자본은 천문학적인 금액의 돈을 쏟아 부으며 민족과 국가라는 이름에 기대어 자본의 탐욕을 위장하면서 스포츠의 상업주의를 더욱 부추길 것입니다.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 되어 버린 스포츠는 끊임없이 비정치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권력과 자본의 지배를 온존시키기 위한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스포츠가 보다 높은 정치성과 사회성을 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권력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놓고 권력과 자본에 저항하는 스포츠의 세계를 여전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랑코의 쿠데타에 맞서 세계를 돌며 스페인 인민정부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전쟁자금을 모으고자 했던, 카탈로니아 민중의 고통과 함께 하고자 했던, 미국의 이라크 침공당시 반전 플래카드를 내걸었던, 스페인 프로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가장 유명한 축구클럽, 지난 월드컵 우승당시 스페인팀은 3-4명을 제외하고 모두 이 팀 소속이었음)의 스포츠를 통한 인간에 대한 연대를 오늘 다시 생각합니다. FC 바르셀로나는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백억의 광고수입(영국의 프로축구팀 첼시의 유니폼에 새겨진 삼성이라는 글씨의 대가로 삼성은 연간 1,1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200억원에 해당하는 광고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을 포기하면서 유니폼에 일체의 상업광고를 부착하지 않으며 스포츠의 상업주의에 반대해 왔습니다. 그 전통을 100년만에 깨고 이 축구팀이 가슴에 새긴 광고는 유니세프(UNICEF)였습니다. FC 바르셀로나는 유니세프라는 이름을 유니폼에 부착하는 대가로 유니세프에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200만유로의 후원금을 지급하였습니다. FC 바르셀로나의 클럽의 모토는 ‘클럽 그 이상’(mes que un club)입니다. ‘스포츠 그 이상’을 오늘 생각해 봅니다.
책! 책! 책!
<미국 흑인사> 벤자민 콸스, 백산서당, 2002
미국흑인의 역사에 관한 책은 국내에 많이 나와 있지 않은 편입니다. 이 책은 미국에 흑인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부터 시대순으로 미국 흑인들의 그 고통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흑인 인권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서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이 책은 미국의 흑인역사를 특수한 한 인종의 역사가 아니라 미국사라는 큰 틀 속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흑인역사는 인권운동, 노동운동과 맥을 같이 해 왔습니다. 미국의 노동운동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2> 귀도 크노프, 자작나무, 1996
독선과 아집의 역사, 광기와 우연의 역사 등의 제목을 붙여 역사 속에서의 에피소드를 모아 구성한 일련의 역사 시리즈 책입니다.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역사에 대해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그냥 시간나는 대로 읽기에 적당한 책입니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2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한 장의 사진을 두고 그 뒷 이야기를 찾아가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