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동자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박근혜 대통령 집권 3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국민들께 드리는 말입니다. 자살률 1위 대한민국, 절망을 딛고 생을 부지하신 여러분들은 진정 열심히 사셨습니다. 너무 자학적이고 과장인가요? 대통령 당신은 그리 무시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이 과장입니까? 방황도 꿈길 같아야 할 10대와 2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죽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비합리적인 일은 아닙니다”라고 한 어떤 서울대생의 유서는 사회의 합리성에 대한 비통한 질문이며 의심할 수 없는 현실의 단면입니다.
이것은 희망의 문제입니다. 대통령 당신의 국민에게 희망은 있습니까? 국정교과서로 하나의 생각만 주입하는 것이 희망입니까?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북을 봉쇄하는 일, 공존이 아닌 대결에 희망이 있습니까? 소녀상을 10억 엔에 팔아치우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창조경제였단 말입니까? 무수한 질문이 대통령을 향하지만, “3년을 보고도 뭘 기대하냐!”는 힐난에 아득함이 밀려옵니다.
테러방지법을 둘러싸고 국민과 야당을 향해 호통을 치고 필리버스터도 모르겠다는 당신의 말에도 아득함을 느낍니다. 테러방지법은 진정 누구를 향한 것입니까? 혹시 대통령 당신이 국민을 겁박하면서 권력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테러를 추진하는 것은 아닌지요?
재벌경제의 낙수효과란 없습니다
겨우 3년, 그렇습니다. 누가 대통령이든 재벌의 돈과 성장, 경쟁과 성과주의에 찌든 한국 자본주의를 한 순간에 바꿀 순 없습니다. 당신의 편견과 달리 우리 진보정치의 ‘변화’ 또한 그리 무모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불평등을 치유할 순 없더라도 문제는 바꾸려고 시도조차 않는 당신의 정치입니다.
재벌경제의 낙수효과란 없습니다. 가계부채 폭탄이 1천2백조 원으로 커졌습니다. 반면 30대 대기업은 700조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을 쌓았습니다. 기업소득 증가율은 가계소득에 비해 10배 이상 높습니다. 담뱃값, 연말정산, 과태료 꼼수증세로 서민들은 이리 저리 털리지만, 지난 5년 기업 감세는 38조7천억 원으로 정부 예산안의 10%에 달합니다. 대출광고의 유혹 속에 서민은 폭탄 돌리기에 살이 떨리는데, 당신은 ‘대기업 물주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일자리를 찾다 지친 이가 번쩍이는 마천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경제의 성과입니까?
노동권 신장 없이 선진국은 없습니다
세상에 없는 경제정책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OECD 하위권인 최저임금부터 제대로 올려야 합니다. 15달러로 인상한 미국 등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작년 세계적 추세였던 것을 기억합시다. 세계 부자들의 사교클럽이라는 다보스포럼조차 소득불평등 해소 없이 성장은 불가능하다 고백했습니다.
한국엔 비정규직이 너무 많습니다. 저임금노동자의 비중은 25%로 세계 2위입니다. 노동자 절반이 월200만 원 이하의 저임금 처집니다. 재벌에게 쏠린 경제 탓에 임금 격차는 날로 심각합니다.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겨우 10%, 10명 중 9명이 권리 없는 노동에 지쳤습니다. 노동개혁을 하겠다면 격차와 차별, 과중한 무권리 노동부터 바꿔야합니다. 노동권의 신장 없이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는 없습니다. 노동을 모르고선 일터의 경제, 일상의 불안을 알 수 없습니다. 노동을 외면하는 것은 대안을 팽개치는 것이며 청년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쉬운 해고는 경영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해고를 쉽게 하는 정부지침으로 노동권의 보루여야 할 노동법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일은 죽어라 시키면서 주는 대로 받든가 나가라는 건, 경영의 한 방식이 아니라 폭력의 한 방식일 뿐입니다. 시장은 실패했고, 더 이상 정치마저 실패해선 안 됩니다. 서민의 생존수단인 노동소득을 안정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책의 우선 목표여야하며 경제 기초체력 강화의 방안입니다. 밤낮으로 일하지만 일자리는 계속 불안하고 돈을 긁어모으는 건 재벌뿐이라면 대통령이 비정상입니까? 국민이 비정상입니까? 한 쪽에선 실업에 아우성이고, 다른 한 쪽은 과중한 업무에 지쳐 병원신세를 못 면한다면, 경제가 비정상입니까? 노동자가 비정상입니까?
사축일기(社畜日記)
“비정상의 정상화”, 이 상식적인 말이 지난 3년 참 고생했습니다. 대통령 당신의 치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통령의 혼마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자꾸만 과거로 회귀하자고 국가를 개조합니다. 아마도 당신에겐 “돈 벌어오라”며 재벌을 키워낸 아버지가 롤모델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산업역군으로 수출전선의 총알받이로 살았던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을. 노인빈곤률 1위 대한민국, 우리 부모님의 등엔 아직도 경제성장의 채찍 자국만 선명합니다. 노동자들은 아직도 눈 뜨면 고역이고 집에 오면 파김칩니다. 대통령은 사축일기를 아십니까? 노동자는 회사의 가축이라는 세간의 한탄입니다. 이들에게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빈곤은 과연 극복된 것입니까?
대통령의 해외 패션쇼가 국격이 아닙니다
경제는 가혹하게 노동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기댈 언덕도 사라져, 민주주의와 공공성이 무너집니다. 민영화는 계속되고, 새누리당은 증세부담을 핑계로 알량한 복지마저 축소합니다. 노동자와 서민의 행복이 국격이지 대통령의 해외 패션쇼가 국격이 아닙니다.
불통통치와 막장인사, 한 때는 청와대 하나 꾸리지 못하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 대통령은 지금 무슨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까? 어쩌면 복면한 사람들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IS 테러와 국내 소요를 막기 위해 테러금지법을 걱정할지도 모릅니다. 행여 농민들 걱정은 안하겠지요. 농업을 희생시키고 FTA로 넓어진다는 영토는 결국 재벌들의 돈벌이 영토일 뿐, 국민에겐 약속의 땅이 아니었음은 이젠 다 아니 말입니다. 자영업자는 또 무슨 죄입니까? 1년 만에 폐업하는 가게가 줄을 잇고, 잘된다던 가게도 월세로 홀라당 털리고 내쫓기는 일이 지천입니다.
하나라도 국민의 편에 설 수는 없습니까
‘생활’이 아닌 ‘생존’을 목표로 각자도생하는 2016년 헬조선 대한민국. 여기까지 이끄느라 대통령도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이 캐나다 트뤼도 총리처럼 “2016년이니까요”라며 혁신정치를 실현하는 날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무슨 미련으로 이리 많은 이야기를 했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광설이 불가피합니다. 대통령의 혼용무도 정치가 낳은 분열과 배제의 치적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만 더할까 합니다. 4월이면 총선이고 세월호 참사 2주기입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던 대통령은 뭘 하고 계십니까? 어렵게 꾸린 진상조사위원회를 흔드는 일이 “무한책임”입니까? 당신의 3년 통치도 힘들었지만, 세월호 참사 2년은 고통의 무게를 더합니다. 제발 이 하나라도 국민의 편에 설수는 없는 것입니까!
희망은 우리에게 맡기고 이제 쉬셔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진보정치가, 우리 정의당이 국민의 편에 서겠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지 자신감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당은 젊습니다. 정의당은 국민의 편이고, 시간은 우리의 편입니다. 정의당의 당원들은 미국의 버니 샌더스보다 더 빨리 정치 돌풍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반드시 채움의 정치, 대안의 정치, 행동하는 광장의 정치를 당신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노동자와 시민의 희망은 우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이제 쉬셔도 좋습니다.
저는 ‘국민의 노동조합’ 정의당 당원입니다.
당신 때문에 진정 수고하고 고단한 노동자와 시민의 후보,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예비후보 양경규입니다.
2016. 2. 25.
노동자 양경규가 당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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