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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전]정의당의 자신감, 양경규

① “할 수 있다. 제2노동자 정치세력화”

① “할 수 있다. 제2노동자 정치세력화”


지금이야 당연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처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얘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보였습니다. 누구는 “임단투로 바쁜 데 웬 정치냐?”라고 했고, 또 누구는 “시기상조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97년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이 한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선거운동을 할 때 한 사업장에서는 “김대중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데 왜 기어 나와서 표를 갉아 먹느냐?”라고 노골적인 말을 하는 조합원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노동자 정치운동은 가장 큰 과제이자 도전이었습니다.


양경규는 민주노총이 처음 대중적인 노동자정치운동을 시작했던 1997년, 민주노총의 정치위원장을 맡아 국민승리21의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연맹 위원장으로서 유일하게 직접 파견을 자청,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97년 대통령 선거의 참담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 1999년부터 2000년에 다시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으로 민주노동당의 창당사업에 대한 책임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국회역사상 처음으로 10명의 국회의원이 탄생하는 쾌거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양경규는 연맹 위원장으로서 지속적인 조합원들에 대한 정치교육 등을 통해 당원을 조직했습니다. 분당 전 민주노동당 당원이 조합원수에 비해보면 공공연맹이 가장 많았습니다.


2008년 진보정치의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진 시간들을 지켜보며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곧바로 지난 시기 노동자정치운동, 진보정당운동에 던졌던 열정을 살려야 한다고 전국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2011년 모두가 절망하고 실망하고 무기력에 빠졌을 때 ‘노동이 있는 진보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노동·정치·연대’를 건설하고 진보정치의 새로운 통일과 재편을 위한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통합’ 정의당까지 오로지 한 길로 달려왔습니다.


양경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오로지 지치지 않는 열정과 헌신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당에 보다 많은 노동자들을 모아내고,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해 나갈 자신이 있습니다.